강화도 명소

참성단(塹星壇) 중수비(重修碑)

강화도농부 2012. 1. 20. 02:42

참성단(塹星壇) 중수비(重修碑)

 

 

참성단(塹星壇)(인천광역시 사적 제136호)을 새로이 보수한 후 그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 가파른 바위 윗면을 손질하여 그 위에 비문을 새겼다.

마니산(摩尼山) 꼭대기에 자리잡은 참성단(塹星壇)은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조선 숙종 때 강화유수를 지내던 최석항이 관내를 순찰하며 마니산에 올랐다가 이곳이 무너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당시 전등사 총섭이었던 승려 신묵에게 명하여 새로이 고쳐 짓도록 하였다.

비는 조선 숙종 43년(1717) 5월에 마련해 놓은 것으로, 비문에는 ‘참성단’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연, 참성단에 대한 선조들의 뜻 등에 관한 기록들이 함께 적혀 있다.

 

이 비는 강화군 마니산(摩尼山)에 위치한 인천광역시 사적(史蹟) 제136호 참성단(塹星壇)을 중수한 사실을 기록한 비이다. 가파른 암벽면에 가로 50㎝, 세로 105㎝ 크기의 비 윤곽을 만들고 그 안에 8행 238자를 새겨 넣었다. 주요 내용은 당시 강화*유수(江華留守) 최석항(崔錫恒)이 관내를 순찰하다가 마니산에 올라 참성단이 무너진 것을 보고 선두포*별장(禪頭浦別將) 김덕하(金德夏)와 전등사 *총섭(傳燈寺 總攝) 신묵(愼默)에게 명하여 보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유수(留守)
조선시대 개성(開城).강화(江華).광주(廣州).수원(水原).춘천(春川) 등 요지(要地)에 두어 그 곳을 다스리게 하던 정이품(正二品) 또는 종이품(從二品)의 경관직(京官職)으로 정원은 2원이다.
조선 후기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수도방위의 중요성이 증가하자 수도방위의 요충인 강화.광주가 유수부로 승격했다.

18세기에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이장하고 수원을 육성하면서 유수부로 승격시켜 4유수부제가 성립되었다. 이때는 유수부의 군사적 기능이 중시되어 개성에는 관리영(管理營), 강화에는 진무영(鎭撫營), 광주에는 수어청(守禦廳), 수원에는 장용영(壯勇營)이 설치되었는데, 유수는 민사행정은 물론 관내의 영(營)과 청(廳)의 지휘권까지 장악했다.

 

*별장(別將)
고려시대 정7품의 무관직.  조선시대 각 영에 소속된 종2품의 무관직
조선시대 산성(山城).도진(渡津).포구(浦口).보루(堡壘).소도(小島) 등의 수비를 맡은 종구품(從九品) 무관직이다.

 

*총섭(總攝)
고려 및 조선시대에 있었던 승직의 하나
넓은 의미에서 도총섭(都總攝)까지 포함되나 현재의 본사(本寺) 주지급(主持級)에 주어졌던 직책명이다.
조선왕조의 역대실록을 둔 평창 월정사(月精寺), 무주 적상산성(赤裳山城), 봉화 각화사(覺華寺), 강화 전등사(傳燈寺) 등을 왕조실록의 수호사(守護寺)로 정하여 그 사찰의 주지를 총섭(總攝)이라 하였고, 실록수호총섭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게 하였다.

 

 

 

 

 

 

 

 

 

 

 

 

 

 

 

 

 

 

 

 

 

 

 

 

 

 

 

 

'강화도 명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화의 고인돌  (0) 2012.02.22
참성단과 소사나무  (0) 2012.02.02
강화 온수리성공회 사제관   (0) 2011.12.29
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안드레 성당  (0) 2011.12.28
강화 온수리 성공회  (0) 2011.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