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명소

강화 온수리성공회 사제관

강화도농부 2011. 12. 29. 00:03

 

강화 온수리성공회 사제관

 

강화 온수리성공회 사제관은 우리나라에 성공회가 처음으로 전파되기 시작할 때, 초대 선교사 고요한주교와 함께 영국으로부터 내한한 조마가 신부가 1896년 강화에 부임하여 선교를 하면서 2년 후인 1898년에 건축한 건물이다. 이후 사제관이 퇴락하자 1933년 원형 그대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사제관은 영국 성공회가 선교를 시작하면서 영국인 신부가 한국전통주거문화 속에 어떻게 적응하고 왔는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주거공간으로, 또 건축수법이나 치목형식에서 완전히 한국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국인들의 주문을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여 기술적인 적용을 하였는가를 드러내는 건축이라 할 수 있다.

 

건물 형식은 'ㄷ'자형 연와구조로 된 5량 4간의 홑집이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부엌과 사제방, 대청, 작은방, 건너방, 협문, 사랑방의 순서로 배열되었다. 한편 협문은 사제관과 본당과의 통로로서 1칸으로 되어 있는데, 건넛방과 사랑방 사이에 위치하여 사랑방을 별개의 공간으로 구성하는 특징을 보인다.

 

대청은 통칸으로 하였는데 바닥의 원형은 우물마루이나 널마루로 바꿨으며 연등천정을 하고 있다. 대청의 전면에는 문을 달아 마루방을 구성하고 그 전면에는 툇칸을 설치하고 유리문을 달아 외부와 구별하고 있다.

 

강화 온수리성공회 사제관은 전통적인 한식건물에 서구문물이 수용되어 변형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건물이다. 특히 영국식 주거생활문화가 한국 전통 주거건축 속에 적응한 결과를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개실(個室)중심주의와 가족의 단란을 중시하는 거실중심주의라고 하는 양자론적인 영국식 주거문화의 특성이 엄밀한 개실이 확보되기 어려운 한식 건물에 변형되어 적응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강화 온수리성공회 사제관의 건축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사제관은 2002년 8월 다시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