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의 진(鎭), 보(堡), 돈대(墩臺)와 돈대지도
강화에는 5진(鎭) 7보(堡) 53돈대(墩臺)가 있습니다.
가리산 돈대처럼 아직 복원되지 못하고 터만 남아있는 곳도 여럿 되지만,나들길 2코스인 바닷가 돈대길에서는 연미정의 월곶 돈대에서 부터 초지돈대까지 10곳이 넘는 돈대들을 볼 수 있지요.
돈대의 사전적인 의미는 경사면을 자르거나 흙을 돋우어 평탄지를 만들고 옹벽을 구축한 곳을 말합니다.
경복궁 교태전 뒤의 정원이나 윤선도 생가 뒤 뜰에도 정원시설을 위한 돈대가 있습니다.
강화의 돈대들은 방위시설을 목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수원 성곽에 있는 3기의 돈대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것이기도 합니다.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는 예비수도로서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고, 이에 따라 방어시설을 확충하면서 강화도의 모든 해안을 방어하는 5개의
진(鎭)과 7개의 보(堡) 등 모두 12개의 진보를 설치하였습니다.진(鎭)은 보(堡)보다 규모가 다소 큰 부대였습니다. 각 진보에는 규모에 따라 첨사(종3품), 만호(종4품), 별장(종9품)이 지휘자로 파견되어 부대를 통솔하였습니다.
강화 5진(鎭) 7보(堡)
강화도의 해안선을 따라 53곳에 있는 강화 53돈대를 관할하였습니다.
진과 보는 모두 조선시대의 군대를 뜻하는 것으로 진은 요즘 군대의 대대, 보는 요즘 군대의 중대 규모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진과 보 사이에는 상하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진,보 아래에는 돈대가 소속되어 있습니다.
5진(鎭)은 월곶진(첨사),제물진(만호),용진진(만호),덕진진(만호),초지진(만호) 이며
7보(堡)는 인화보(만호),승천보(별장),철곶보(별장),정포보(별장),장곶보(별장),선두보(별장),광성보(별장) 입니다.
이 12개의 진보는 각각 3~5개의 돈대를 관할하고 있었습니다. 돈대는 진과 보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관측과 방어를 담당하는 소규모의 군사시설입니다.
돈대(墩臺)의 형태는 원형과 방형 2가지가 있으며, 내부에는 2~3단의 마루를 만들고 외부를 향한 벽면에 각 층마다 작은 안혈(眼穴)을 내어 대포,총,화살을 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돈대 설치의 기록은 조선시대 문헌에 나타납니다.
<남한지 南漢志>에 인조(1623~49 재위)때 수축된 남한산성에 2기의 돈대가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1679년(숙종 5년) 병조판서 김석위(金錫胃)의 건의에 따라 강화에 53개소의 돈대가 설치되었는데, <여지도서 與地圖書>에 그 명칭과 위치가 그려져 있습니다. 1796년 완공된 수원 성곽의 서북,남,동북의 3곳에 돈대가 설치되었는데 이를 공심돈(空心墩)이라 불렀으며 수원성(華城)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시설물입니다. 현재는 서북 공심돈만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공심돈은 서양 중세 봉건제후 성의 일부인 탑과 유사한데 수원성 성역에 참여했던 정약용이 <기기도설 奇器圖說>을 연구한 것으로 미루어 서양 성곽을 본뜬 것으로 짐작됩니다.
축성 연대는 53개 돈대 중 49개 돈대는 조선 숙종5년(1679년) 기미년에 유수 윤이제 재임시 어명에 의한 병조판서 김석위의 지휘를 받아 함경도,황해도,강원도 삼도의 승군(僧軍) 8,9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 만에 완축하였으며 빙현돈은 숙종44년(1718년)에 유수 권성이 축조하였으며 철북돈은 다음 해인 숙종 45년(1719년)에 유수 심현택이 축조하였고 초루돈은 그 다음 해 숙종46년(1720년)에 유수 어유구가 축조하였고 작성돈은 영조(1725년)에 유수 박사익이 축조하였습니다.
그 후 양암돈과 갈곶돈 두 돈대는 너무 오래되어 폐쇄하였고 51개 돈대만 수호, 관리하였습니다.
5진(鎭)
월곶진 : 강화읍 월곶리 연미정과 황형기념비 근처(옥창돈,월곶돈,휴암돈,적북돈을 관할)
제물진 : 강화읍 갑곶리 강화역사관이 위치한 일대(갑곶돈,염주돈,제승돈,망해돈을 관할)
용진진 : 선원면 연리에 복원됨(용당돈,좌강돈,가리산돈을 관할), 향토 유적 제8호
덕진진 : 불은면 덕성리에 복원됨(덕진돈,소넉항돈,용두돈을 관할), 사적 제226호
초지진 : 길상면 초지리에 복원됨(섬암돈,장자평돈,초지돈을 관할), 사적 제225호
7보(堡)
인화보 : 양사면 인화리 인화돈의 남동쪽밭과 마을일부(작성돈,구등곶돈,광암돈,인화돈,무태돈을 관할)
승천보 : 송해면 당산리 승천포 부근(낙성돈,숙룡돈,소우돈,빙현돈,석우돈을 관할)
철곶보 : 양사면 철산리 철곶돈 맞은편 철산교회 부근(천진돈,철북돈,의두돈,불장돈,초루돈을 관할)
정포보 : 내가면 외포리의 '성안이'라고 불리는 곳(석각돈,삼암돈,망양돈,건평돈을 관할)
장곶보 : 화도면 장화리 장화감리교회 하단 부근(검암돈,장곶돈,북일곶돈,미곶돈을 관할)
선두보 : 길상면 선두리 '진터'로 불리는 정족산성의 서문 아래쪽(후애돈,동검북돈,택지돈을 관할)
광성보 : 불은면 덕성리에 복원됨(광성돈,오두돈,화도돈을 관할), 사적 제227호
현재 진(鎭)은 용진진,덕진진,초지진만 남아있으며 월곶진이 발굴 복원중입니다.
보(堡)는 광성보만 복원되어 있습니다.
※영문(營門) 관할 돈대 : 망월돈, 계룡돈,굴암돈,송강돈,송곶돈,분오리돈
※폐지된 돈대 : 갈곶돈,양암돈
8포대(砲臺) : 갑곶포대,인화성포대,황산포대,진남포대,남장포대,오두정포대,사망금포대,용진포대
출처 : JOURNAL of D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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