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歷史 文化

145년 만의 귀향 '외규장각 의궤'

강화도농부 2011. 6. 22. 16:37

*1866년 강화도를 침약한 프랑스군은 ○○○○을 파괴하고 ○○○○의 의궤를

   약탈해감. 

1992년 정부는 ○○○○ 도서목록을 프랑스에 전하여 도서 반환을 요청.

1993년 9월 한국·프랑스 정상회담에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경부고속철도

   부설권을 프랑스의 테제베(TGV)가 따 내기 위한 의도로 《휘경원원소도감의궤》

   1권을 가지고 와  ○○○○ 도서 반환의 의지가 있음을 밝힌 바 있음.

그러나  ○○○○ 도서는 반환되지 않았고 2000년 10월 다시 양국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필사본이 없는 63권을 '대등한 문화재 교환 전시' 형식으로 2001년까지

    한국에 반환하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음.

 

 

고등학교 근현대 교과서에도 나온 내용인데요. ○○○○, 뭔지 다들 아시겠지요? 네, 바로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된 외규장각입니다. 

프랑스 외규장각 의궤가 귀국하고, 일본 조선왕실 의궤가 귀국길에 오를 예정입니다.

 

 

간절히 기다린 ‘외규장각 의궤 귀환', 환영대회~!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가운데,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보관 중이던 조선왕실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을 기념하는 ‘외규장각 의궤 귀환 환영대회’가 지난 6월 11일 개최됐는데요. 1백45년 만의 귀향을 따뜻하게 반기는 환영연이었습니다.


 

<이봉행렬이 6월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경복궁 근정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날 행사는 오전 강화도에서 열린 고유제(告由祭)를 시작으로 오후 경복궁에서 열린 이봉행렬, 고유제, 축하 공연 등으로 이어졌는데요.

 

이봉행렬’은 중요한 의물(儀物)을 봉안한 가마를 모시는 행렬을 말하는데, 의궤를 가마에 모시는 모습을 재현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의궤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연출했습니다. 세종로에서 근정전까지 이어지는 가마 행렬에는 무용수 등 5백 20명이 동원됐습니다.

 

 ‘고유제’란 국가나 개인의 집에서 중대한 일을 치른 뒤, 혹은 장차 치르고자 할 때 종묘나 가묘 등에 그 사유를 고(告)하는 의식입니다. 조상들에게 고할 만큼, 이번 외유장각 의궤 귀환은 국가적으로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근정전 앞에서 진행된 고유제에서는 수제천과 오방북춤 등의 화려한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환영행사에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외규장각 의궤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는 것을 알린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와 의궤 귀환에 힘을 보탠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부장관, 벵상 베르제 파리7대학 총장 등이 참석했는데요.


이 대통령은 이날 환영대회에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나란히 한복을 입고 참석, “우리는 가난 속에서 살기 위해 힘써 왔다. 이제는 우리의 고유문화와 문화재를 돌봐야 할 시기를 맞이했다”며 정부는 우리 문화재를 찾는 데 힘을 모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문화학술적 가치 높은 어람용 의궤 포함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외규장각 의궤는 지난 5월 27일 4차 귀환
을 끝으로 2백97책 전체가 한국에 돌아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이관됐습니다. 지난 4월 14일 1차분 75책 귀환을 시작으로 4월 29일 2차분 73책, 5월 12일 3차분 75책이 돌아온 것인데요.


 

<반환되는 외규장각 도서 중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后嘉禮都監儀軌)] 하권의 반차도(班次圖)>

 

이들 의궤는 대부분 임금이 보기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이른바 ‘어람용’ 의궤이며, 전체 2백97책 중에는 국내에 없는 유일본 30책이 포함되어 있어 문화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소중한 도서들이지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번에 돌아온 조선왕실 의궤를 국민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오는 7월 19일부터 9월 18일(62일간)까지 특별 전시전 ‘1백45년 만의 귀환-외규장각 의궤’를 개최하는데요. 또 외규장각 의궤를 누구나 가정에서도 편리하게 접근하여 볼 수 있도록 금년내로 유일본(30책)에 대해 온라인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오는 2013년까지 전책(297책)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며, 국내 전문학자로 연구팀을 구성하고 학술 심포지엄개최, 논문집 발간 등의 연구 활동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 밖에 의궤의 영인본을 제작·보존·활용에 만전을 기하고 의궤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상품도 개발·보급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1백45년 만의 귀환-외규장각 의궤’ 전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외규장각 의궤 온라인 서비스는 문화재청 국가 기록유산 포털☜을 통해 열람이 가능합니다.

 

 

해외의 우리 문화재 환수가 끝나는 그 날까지

 

<11일 오전 강화도에서 외규장각 의궤 귀환 환영행사가 열린 가운데 145년만에 제자리로 돌아와 놓여 있는 외규장각 도서.>

 

이번 외규장각 의궤 귀환은 너무도 감격스러운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문화재청이 집계한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아직도 현재 20개 나라에 14만5백60점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일본에 6만5천3백여 점으로 가장 많고, 미국 3만7천9백여 점, 독일 1만7백여 점, 중국 7천9백여 점, 영국에 3천6백여 점 등이 있다고 하니, 국민 모두가 문화재 환수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우리 문화재 환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와 민간에서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찾아오기 위한 기구가 출범하는 등 우리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노력도 구체화되고 있는데요.

 

문화재청은 지난 2009년 4월 정부와 민간이 참여하는 ‘문화재환수협의회’를 설립했으며, 지난 5월 25일에는 문화재 환수 문제를 전담하는 국외문화재팀을 신설했습니다.

 

또 민간단체인 ‘우리문화재찾기운동본부’도 6월 1일 출범했는데요. 운동본부는 앞으로 해외반출 문화재 실태조사와 함께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며 문화재 약탈 피해국 국제회의 유치와 서명운동 등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난 4월 28일 일본 중의원 본회의에서 조선왕실 의궤 등 한국 도서 1천2백5책을 반환하는 ‘한·일 도서협정’ 비준안이 통과된 것도 민간단체인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의 노력이 기반이 되었다고 하니, 문화재 환수에 민간단체들의 노력과 국민들의 관심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혜문 스님이 중심이 돼 2006년 결성된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는 조선총독부가 일본 궁내청으로 빼돌린 왕실의궤 등의 환수운동을 시작했으며, 지난해 8월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의 의궤 반환을 약속한 담화로 이어져 결실을 맺게 됐다고 합니다.

 

 

외규장각 의궤의 감격스러운 귀환을 시작으로, 제자리에 놓인 아름답고 소중한 문화재들이 줄줄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환수할 문화재가 없는 그 날까지!

 

 

외규장각 의궤’ 존재 처음 알린 박병선 박사
“우리의 남은 의무는 ‘대여’란 말 없애는 것”

 

“의궤가 한국에 영원히 남도록, 다시는 프랑스에 가지 않도록 여러분 모두가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지난 6월 11일 오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브리핑룸. 이날 오후 치러진 ‘외규장각 도서 귀환 대국민 환영식’에 앞서 의궤 귀환에 힘쓴 양국의 주역들과 함께 가진 기자회견에서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린 재불(在佛) 서지학자 박병선(83)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당부한 말입니다.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린 박병선(83) 박사에게 외규장각 도서 귀환은

정말이지 감격스럽고 가슴 뭉클한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

 

외규장각 도서 귀환 환영식에 맞춰 잠시 귀국한 그는 “(의궤가 한국에 돌아와) 가슴이 뭉클하고 뭐라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며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이럴 때 쓰는 말일 것 같다”고 했는데요.


그러면서도 “지금 이렇게 의궤가 한국에 와서 축제도 하고 있지만, 우리의 의무는 아직도 남아 있다”며 ‘대여’라는 말을 없애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손에 손을 잡고 장기간 노력해야 한다”고 부탁했습니다.


박씨는 36년 전인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별관 창고에서 ‘파지(破紙)’로 분류된 채 먼지에 싸여 있던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발견해 한국에 처음 알린 장본인입니다. 그는 창고에서 발견한 이 도서들이 조선왕실의 행사를 그림과 함께 기록한 의궤이고,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조선을 침공한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문화재라는 사실을 밝혀 냈지요.


“1950년대 말부터 병인양요 때 가져왔던 물건이 뭔지 찾기 위해 방방곡곡을 헤맸는데 없었어요. 2차대전 때 분실됐을 거라고 단념했는데 우연히 국립도서관의 폐지 놓는 창고에서 발견하게 됐고, 그것을 찾아서 여러분들께 알려준 것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국민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한 거지요. 제 자신이 뭐 특별한 일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외규장각 도서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개인의 의미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는데요. 그는 고령에다 지난해 한국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아 지팡이 없이는 거동조차 힘겹지만, 휠체어를 타고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영구 귀국 의사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여러 자료가 프랑스에 있기 때문에 완전히 한국에 올 수는 없다”며 “그러나 한국에 자주 와서 한국의 여러 역사가·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으며 독립운동사를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박병선 박사.

 

그는 “요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 대장이 보낸 공문과 그때 보도된 모든 자료, 병사들이 귀국한 뒤 쓴 논문과 보도를 종합·연구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일제강점기 때 주한 프랑스 영사관이 본국으로 보낸 외교문서를 해독해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습니다.

 

 

<이 글은 대한민국 정책포털 공감코리아에서 발행하는 위클리공감(6.22일 발행, 114호)에 실렸습니다.위클리공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