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歷史 文化

정제두묘

강화도농부 2016. 3. 14. 22:43

정제두묘





조선 후기 학자이자 강화학의 태두인 정제두(1649~1736)의 묘이다. 정제두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사앙(士仰), 호는 하곡(霞谷)이며,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정몽주의 후손으로 우의정 유성(維城)의 손자이고, 진사 상징(尙徵)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한산 이씨로 호조판서 기조(基祚)의 딸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여 24세에 과거 공부를 그만 두고 양명학 연구에만 전념하였다.


61세에 선조들의 무덤이 있는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하곡(霞谷) 마을로 옮겨와 살았다. 아들 후일(厚一)을 비롯하여 이광명(李匡明), 신대우(申大羽), 심육(沈?), 윤순(尹淳), 이광사(李匡師) 등이 그의 문인으로 학풍을 이었다. 그가 속한 소론의 가학으로서 학파를 형성하여 강화도를 중심으로 계승되어 강화학파라 불리게 되었다. 양명학을 중심으로 한 강화학파는 정제두를 시작으로 한말 이건창, 이건승을 이어 박은식과 정인보에게로 그 학통이 계승되었다. 묘역은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62-5 길 바로 옆에 있다.


 아버지 상징 묘역 바로 뒤편 위에 있다. 묘역은 완만한 경사지에 사성이 없이 용미만이 길게 되어 있고, 그 앞에 원형봉분이 있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있다. 하계부분에는 좌우에 민무늬로 된 상단에 띠를 2개 두른 망주석과 금관조복에 양관을 한 문인석이 있다. 신대우(申大羽)가 글을 짓고, 서영보(徐榮輔)가 글씨를 쓴 묘비가 있다. [참고문헌] 강화군사편찬위원회,『신편 강화사』, 강화군, 2003. 강화군·강화문화원, 『강화금석문집』,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