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이야기

나치독일 기갑부대 의 첫 전차였던 독일1호 전차

강화도농부 2011. 8. 20. 00:05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독일 1호 전차 (SdKfz 101 PzKpfw I)는 제1차 세계 개전후에 독일이  개발했었던 최초의 전차였다.
이 전차의 무장은 특이하게도 주포가 구비되지 않고 7.92mm 기관총만  2정이 장착된 관계로 인해
훈련용 전차(대규모 기갑부대 전술 숙달용) 정도였다.
하지만 독일 기갑부대는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폴란드 침공과 프랑스 침공때까지 주력 전차로 활용했다.
그러나 1940년 프랑스 침공이후 1호전차는 일선에서 퇴역 시켜 후방 경비, 훈련용으로 사용되거나
차체를 자주포나 대전차자주포 등에 파생형으로 사용하였다.


1호 전차는 많은 이름과 설계안을 거쳤는데, 대부분 기록에 나오는
공식 명칭은 Panzerkampfwagen I(약칭 PzKpfw I)였다.
공식 형식명은 Sonderkraftfahrzeug 101(약칭 SdKfz 101)이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특수군대용차량"이란 의미 이다.
개발 기간 중에는 산업용 트랙터라는 의미인 Landwirtschaftlicher Schlepper(약칭 L-S)로 불렸다.
이는 독일의 전차 개발 시도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개발이 시작된 1932년 당시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약이었던 베르사이유 조약의 눈치를 살필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종종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Traktor' 등의 명칭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독일 1호 전차는 많은 수가 특수 목적이나 자주포로 개조되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1호전차로 트랙 돌기 퍼레이드를 펼치는 독일 기갑부대 - 1937년  


베르사이유 조약의 제약으로 전차 개발을 할 수 없었던 독일이었지만
1932년부터 제 1차 세계 대전의 전훈을 바탕으로 라인메탈, 크루프,헨셀,MAG AG, 다이물러 벤츠등이
5톤 미만의 경전차 개발을 요구받고 개발에 들어갔고,1933년에 이 중에서 크루프사의 설계안이 채택되었는데,
이 설계안은 비밀리에 소련을 통해서 밀수한 영국제 카든 로이드 탱크를 많이 참고한 것이라고 한다.


베르사이유 조약은 독일이 어떤 종류의 전차든지 개발 및 생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크루프사가 설계한 모델은 독일어로 Landwirtschaftlicher Schlepper,
즉, 농업용 트랙터라고 불렸다.
1933년 말, 설계는 크루프사의 차체와 다이믈러 벤츠사의 포탑 설계를 조합한 것으로 바뀌었다.
1934년, 이 전차는 1호 전차 A형(독일어: Panzer I Ausf A)로 명명되어
1934년 7월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독일 1호 전차의 시제 차량은 소련에서 시험되었다.
당시는 독일과 소련은 군사적으로 밀월관계였다.
서방 연합국으로부터 외교적으로 고립된 처지였던 두 나라는 1920년대부터 군사 교류를 비밀리에 추진했다.
많은 독일의 군사 기술자가 소련에서 비밀리에 무기 개발 및 테스트를 했고,
그 댓가로 소련에 군사 기술을 전수해주었다.
1호 전차 역시 이 과정을 거친 것이다.

원래 1호 전차는 정찰 및 보병 지원 임무를 위한 경전차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개발 목표는 독일 전차부대의 편성 및 훈련용 차량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독일은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A7V라는 전차를 전쟁 말기에 개발했으나,
생산 수량도 적었고 연합군 수준의 전차부대 편성을 해보지도 못한 채 전쟁을 끝내야 했다.
독일 전차부대는 사실상 경험이 전무한 백지 상태였던 것이다.
따라서 독일군 수뇌부의 우선 관심 사항은 제대로 된 전차가 아니라
제대로 전차를 운용할 수 있는 부대 편성 및 운용 교리의 확립이었다.
그런 용도로는 1호 전차 정도의 경전차는 비용 대비 효과면에서 확실히 괜찮은 것이었고,
주력 전차로 운용할 생각은 그들 자신도 갖고 있지 않았다.
가능한 본격적인 전투용 전차를 생산하여 기갑사단에 배치하고 1호 전차는 대체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발발 시점에서 1호 전차는 여전히 중요한 주력 전차로 사용되고 있었다.
성능이 더 나은 전차의 생산이 계획만큼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1호 전차 자체는 2가지 주요 변형으로 생산되었다.
최초 생산된 1호전차A형은 향상된 엔진과 개량된 B형으로 대체되었다.
B형 전차는 더 길어진 차체와 보다 대형의 엔진때문에 장착된 추가 외부 로드휠로 구별할 수 있다.
A형은 로드휠이 4개이며, B형은 5개다. 운용은 A형과 B형이 모두 유사했다.
공수 작전용 전차 개발이나 중장갑 전차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1호전차 대체 시점에서 전투 임무에는 적합하지않은 구식 전차가 되어 있었다.
전차의 작은 크기 때문에 보다 큰 구경의 전차포를 탑재혀라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으나,
다른 용도로 개조되어 사용되었다.
훈련용, 최전방 부대에 탄약보급형, 지휘용 전차 등은 성공적이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야지에서 1호전차로 훈련중인 독일군 - 1937년


1호전차는 훈련용 전차로 계획되어 실제 전투에는 3호 전차로 대체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3호 전차의 생산 지연때문에 1호 전차가 폴란드 침공 당시 주력 전차로 사용되었고,
프랑스 침공전과 덴마크,노르웨이 침공전 에서도 주력 전차로 사용되었다.
노르웨이 에서는 당시 노르웨이군의 대전차 무기 부족 문제로, 잘 싸웠지만
여전히 많은 1호 전차가 중기관총의  집중 사격및 화염병,박격포,야포(Field gun)의
직접 조준 사격, 세제 폭탄(Improvised explosive device, IED) 등에 파괴되었다.
 중국 국민당도 15대의 1호 전차를 구입했는데, 이 1호 전차들은 937년 8월부터 11월까지 상하이 전투에 투입되었다.
투입된 1호 전차 대부분은 파괴되거나 중국군 자신의 손으로 버려졌다.

독일군이 전투용 장비에서 1호 전차를 제외시킨 후,
1호 전차들은 점령지의 순찰 임무나 전차병 훈련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자주포 등의 다른 파생형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1호 전차는 7.92mm MG-13 기관총 2정(후에 MG-34로 교체)을 포탑에 무장했다.
이 기관총은 포탑에 고정 장착되었다.
이 때문에 1호 전차는 보병과 자동차화 경차량들을 상대로 좋은 전차로 평가받게 했다.
그러나, 장갑 차량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력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1호 전차의 승무원은 운전수와 차장 2명이다.

운전수는 전방에 앉으며, 차장은 포탑에 앉아 기관총과 무전기를 담당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1호전차로 훈련중인 독일군 - 1937년


1호 전차의 장갑은 대단히 얇아 겨우 소총탄과 동급 기관총탄을 막아내는 정도였다.
1호 전차는 측면은 13mm 두께의 경사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약간 있는 균질 압연 강판 장갑이며,
포탑 상부는 8mm, 차체 상부와 측면은 6mm의 장갑을 가졌다.
장갑은 소총탄과 대부분의 기관총탄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보다 강력한 대전차총과 대전차포에는 무력했다.
장갑이 얇음에도 불구하고, 실전 사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안에
비싼 기법인 표면 경화처리된 것이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1호전차로 강을 도강하는 독일 기갑부대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열차로 수송된 독일 1호 전차


1호전차 A형은 57마력(43kW) 크루프사의 M305 4실린더 가솔린 엔진을 사용했다.
도로 상에서 시속 37km로 145km를 주행할 수 있었다.

B형은 100마력(75kW) 6실린더 마이바흐 NL38TR 엔진으로 교체되었는데,
B형은 노상에서 최고 속도 시속 40km로 170km 주행이 가능했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1호 전차는 사실상 본격적인 기갑 전투용 차량으로서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1호 전차와 거의 동시에 개발된 2호 전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제 1차 세계 대전때에도 몇 대의 시제품만 생산한 것에 그쳐
기갑부대 운용 경험이 사실상 전무했던 독일에 다음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독일 1호 전차는 독일 중공업 회사들에 전차의 설계 및 생산에 관한 기초적 데이터를 마련해 주었다.
 1호 전차의 설계 및 개발에 참여했던 회사들은
이후 독일 전차 개발에 항상 그 이름을 내밀었으며 그러한 형태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물론 전차의 수효가 부족했던 독일군은 1호전차 및 2호전차를
1940년 프랑스 침공전 까지 주력 전차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시기가 독일군 기갑부대의 최전성기였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