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명소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사기리 탱자나무

강화도농부 2011. 7. 31. 21:46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명칭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江華甲串里탱자나무)
구분 천연기념물
구군 강화군
지정번호 78호
수량 1주(79㎡)
지정일자 1962.12.03
소유자 강화군(강화군)
소재지 강화읍 갑곶리 1016

 

탱자나무는 주로 영·호남지방에 분포하며 일본·중국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과수원 울타리용으로 적합하다.

강화도 역사박물관 옆에 서 있는 갑곶리의 탱자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2.12m이다.
강화도는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몽고의 침입을 해 있었던 곳이며, 조선 인조(재위 1623∼1649)도 정묘호란(1627) 때 난을 피했던 장소이다. 이 때 외적을 막는 수단으로 강화도에 성을 쌓고, 성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외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탱자나무는 그 때 심은 것이 살아남은 것으로 추측된다.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어서, 탱자나무를 처음 심었을 때 조정에서는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하게 하였다고 한다.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심은 국토방위의 유물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한계선인 강화도에 자리하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갑곶리 탱자나무는 사기리의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9호)와 함께 강화도가 우리 나라 서해안에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 됨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한 편 이곳 강화도에 처음 탱자나무를 심게 된 이유가 성벽밑에 적병의 접근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 탱자나무는 우리 조상들의 국토방위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유물이기도 하다.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명칭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江華砂器里탱자나무)

구분 천연기념물
구군 강화군
지정번호 79호
수량 1주(262㎡)
지정일자 1962.12.03
소유자 이만규, 이붕재(강화군)
소재지 화도면 사기리135-10

 

탱자나무는 주로 영·호남지방에 분포하며 일본·중국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과수원 울타리용으로 적합하다.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의 나이는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3.56m, 뿌리부분 둘레 2.2m이다. 가지의 굵기로 미루어 볼 때 매우 컸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현재 대부분 가지가 죽고 동쪽 가지만 살아 있다.

강화도는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몽고의 침입을 피해 있었던 곳이며, 조선 인조(재위 1623∼1649)도 정묘호란(1627) 때 난을 피했던 장소이다. 이 때 외적을 막는 수단으로 강화도에 성을 쌓고, 성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외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탱자나무는 그 때 심은 것이 살아남은 것으로 추측된다.

강화 사기리의 탱자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심은 국토방위의 유물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한계선인 강화도에 자리하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좀처럼 키가 크지 않은 탱자나무가 4m 거목으로 자랐다. 가시돋힌 탱자나무는 흔히 집 뒷담이나 과수원의 울타리로 아무렇게나 자라는 나무여서 이 노목은 강화읍 갑곶리와 화도면 사기리에 있는 두 그루는 400년 이라는 수령과 함게 더욱 돋보인다.
  

높이는 3.8m로 조금 낮지만 땅위 2.8m 높이에서 세갈래로 갈라진 가지가 용트림을 해 한층 품위가 있어 보인다. 지금도 해마다 두아람식의 탱자가 열리는 이 나무는 한말 암행어사를 지냈던 이건창의 선조가 심은 것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