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명소

갑곶리 탱자나무

강화도농부 2012. 8. 2. 16:22

갑곶리 탱자나무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9호)와 함께 강화도가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 됨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탱자나무는 중부 이남의 마을 부근 들에서 자라는 길이 2∼3m의 낙엽관목이며 산울타리로 심는다. 귤나무를 닮았다 하여 구귤(枸橘)이나 지귤(枳橘)이라고도 한다.

 

줄기는 많은 가지가 갈라지고 약간 편평하거나 모서리져 있으며 녹색을 띠고 있다. 길이 3∼5cm의 억세고 날카로운 가시가 어긋나 있다. 잎은 어긋나 있으며 길이는 2∼6cm이며, 도란형인 소엽 3개로 이루어진 3출엽으로 자루의 길이는 2mm이고 날개가 있다. 꽃은 5월에 피는데 흰색이며 지름은 3∼5m로서 잎보다 먼저 줄기 끝이나 가지의 겨드랑이에 1∼2개 달린다.

 

꽃받침 조각과 꽃잎은 각각 5개이며 수술은 다수이고 암술은 1개인데 씨방에 털이 많다. 열매는 지름이 3∼5cm로서 둥글고 황색이며, 익으면 향기가 나고 약용으로 이용한다. 묘목은 귤나무의 태목(胎木)으로 하고 성목(成木)은 남쪽지방에서 산울타리로 이용하고 있다. 탱자나무는 운향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줄기가 항상 푸르러 상록수로 혼동하기 쉽다.

 

중국이 원산지인 이 식물은 경기도 이남에서는 어디에나 잘 자라는 흔한 나무이다. 우리나라 남부의 제주도와 가덕도 등의 섬에서 자생한다. 강화는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어서, 탱자나무를 처음 심었을 때 조정에서는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하게 하였다고 한다.

 
김포와 강화를 연륙하는 강화대교 왼쪽에는 새로 복원한 갑곶돈대가 위치하고 있다. 갑곶리 탱자나무는 현재 갑곶돈대 근처 토성의 비탈면 아래쪽에 있는데, 보호를 위해 목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석축이 있어서 나무에 해로운 흙의 유실은 없는 실정이다. 굵은 줄기의 아래쪽 내부는 목질부가 부후해 있고 줄기에는 독특한 골이 세로로 나 있다.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고 수관은 경사면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감이 있다. 현재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되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 4m, 지상부의 줄기 둘레 1m이다. 2갈래로 갈라졌으며 가슴높이의 지름은 약 14cm 정도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쪽 1.5m, 서쪽 4.4m이며, 남쪽 3.3m이고, 북쪽 2.2m이다. 이 탱자나무에는 많은 열매가 맺으며, 둘레에 큰 가중나무가 밋밋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 나무는 본래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강화 외성의 외곽에 심었던 나무이다. 강화는 국가에 커다란 변란이 있을 때마다 제2의 서울로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역사적인 고장이다. 특히 고려 고종 때는 몽골의 침공으로 천도를 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게 항거하는 동안 왕의 가족들이 난을 피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 전란을 계기로 성벽을 강화하고 적군의 접근을 어렵게 하기 위해 성 밖에 탱자나무 울타리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조상들의 국토방위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한편 민가에서 탱자나무를 생울타리로 심은 이유는 가지나 줄기가 밑에서부터 밀생하므로 가시 때문에 도적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보다는 가시가 귀신을 쫓는다는 주술적인 면이 보다 많이 작용하였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엄나무의 경우처럼 탱자나무의 가지를 잘라 문 위에 걸어두어 역신(疫神)을 쫓는 벽사(?邪)의 민속도 같은 연유라 할 수 있다. 옛날부터 울타리용으로 많이 사용하던 나무는 “귀신도 뚫지 못한다.”라고 할 정도로 그 가시가 견고했다.


한편 이곳 강화도에 처음 탱자나무를 심게 된 이유가 성벽 밑에 적병의 접근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 탱자나무는 우리 조상들의 국토방위(國土防衛)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출처 : 강화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