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歷史 文化

강화도 고려산(高麗山) 오련지(五蓮址)

강화도농부 2011. 8. 14. 23:21

 

 


고려산 오련지

고구려 장수왕의 명을 받은 인도의 천축조사(인도고승)는 동자승 하나를 대동하고
북쪽(지금의 함경북도)에서 남쪽으로 내려 오면서 절을 지을만한 터를 물색했으나
이상하게도 처음에는 절터로 좋아 보이다가도 일단 정하고 나면 마음에 들지 않기를
     수 없이 되풀이하며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남으로 내려 오다가 마침내
강화도(당시에는 혈구군(穴口郡) 까지 오게 되었다.

  
강화를 두루 살펴본 후 이곳에는 틀림없이 절터가 있을 것 같아 찾아 보았으나 역시 찾지 못하고 밤 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명멸하는 것을 보며 염불을 외노라니 잠이 들었는가 아니면 생시인가 비몽사몽 간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 그대는 내일 이 산꼭대기 (지금의-고려산)로 올라가 보시오."하고는 노인은 사라 졌다.

   
이튿날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천축조사와 동자는 숲을 헤치며 고려산 산정으로 올라가 보니 신기하게도 5개의 연못이 있었으며,(지금도 연못 3개가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있음) 각각의 연못마다 백련(白蓮), 청련(靑蓮), 적련(赤藏), 황련(黃蓮), 흑련(묵련)이 연못마다 찬란하게 피어 있어 천축 조사는 백발 노인의 지시대로 오종의 련(五種蓮)을 꺾어서 정상에서 내려다 보아 절터를 지을 만한 명당에 도력(導力)으로 허공에 날렸더니 신기 하게도 적련(赤藏), 황련(黃蓮), 흑련(묵련), 백련(白蓮)은 원하는 절터에 연꽃이 떨어졌으나 부득 청련(靑蓮)만은 조사가 원하지 않는 곳에 떨어져 절터로 원하던 위치에는 너무나도 원통한 나머지 절의 이름을 " 원통암 " 이라 명명하여 절을 짓게 하고 청련이 떨어진 곳에 청련사를 지었으며 현재는 청련사와 원통암을 통합 관리하고 있다.

   
고려산(高麗山)의 이름도 당시에는 오련산(五蓮山)이라 하였으나. 고려가 강화로 철도한 후 고려산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흑,적,백,청련사는 고려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분포되었으나 황련사만은 강화읍 남산(南山) 서쪽
보만정(강화의 3대 정자의 하나로 일명 팔모정이라고도 함)자리에 위치하며 현재는 황련사지(寺址)로 보존되고 있다.